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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집에 머물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없어 보입니다. 친애하는 친구여,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예술에 헌신하는 것, 지난가을 우리가 거듭 얘기했던 ‘성스러운 형제애’가 바로 그것일 수 있습니다.”
－1894년 5월 페카 할로넨이 악셀 갈렌에게 보낸 편지


2012년 헬싱키 아테네움 미술관의 한 전시실에 들어서기 전까지 눈 쌓인 겨울 풍경의 대가로 러시아의 이반 시시킨이나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정도를 꼽곤 했다. 그때 압도적으로 덮쳐온 페카 할로넨의 눈 그림들은 겨울이라는 시간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게 했다. 시시킨의 눈은 예금담보대출 깊은 숲을 지배하는 여러 시간대 중 하나를 표현한 것이고 쿠스토디예프의 눈은 마슬레니차 등 공동체의 풍속을 나타내기 위한 세팅이겠지만 페카 할로넨의 눈은 핀란드의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영적이기까지 하다는 깨달음이 일었다.


(1899)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c 삼송18단지 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48998sunu.jpg" data-org-width="1000" dmcf-mid="FtkAfZjJTL"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 요구하는 .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48998sunu.jpg" width="658">

페카 할로넨 <눈 덮인 어린 소나무> (1899)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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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카 할로넨은 1865년 230여 개의 호수가 있는 풍광으로 이름난 핀란드 북부 사보 지역 라핀라티에서 태어났다. 성장기의 집안 분위기는 자유롭고 문화적으로 자극이 많은 편이었다. 핀란드어를 구사하는 시골 청년이었던 그는 (당시 핀란드인들에겐 스웨덴어가 문화어였다) 농부이면서 교회의 주문을 받아 장식미 현대캐피탈저금리 술가 역할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장식 예술가로의 감각을 익히고 훈련받다가 곧 보다 창의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헬싱키의 드로잉스쿨을 거쳐 자신을 찾기 위해 핀란드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며 핀란드를 고민했다.
처음엔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나중엔 아카데미 비티를 통해 폴 고갱 밑에서 공부했고, 박물관과 전시회에서 예술사뿐만 아니라 자연주의, 상징주의 등 당대의 최신 흐름도 흡수할 수 있었다. 할로넨은 고갱이 자신에게 서정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자유를 주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퓌비 드 샤반느의 기념비적인 그림 <가난한 어부>(1881)에 마음을 열었다. “내가 파리에서 보는 건 아주 오래전 세계이다.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퇴폐적인 시대처럼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았던 영성과 위대함의 시대 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말할 것은, 나가서 배우라는 것이다. 시대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알아보라.”

(1881) / 그림출처. musées d'Orsay"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0325tpjw.jpg" data-org-width="1000" dmcf-mid="fHupIJ0HS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0325tpjw.jpg" width="658">

피에르 퓌비 드 샤반 <가난한 어부> (1881) / 그림출처. musées d'Orsay


민족주의 개념이 빠르게 확산한 19세기 말의 상황에서 핀란드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젊은 예술가 할로넨이 핀란드 민속 생활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 중 하나가 <풀 베는 사람들>(1891)이다. 파리에서 회화를 공부하며 겨울을 보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 선보인 그림이다. 사보 지역 사람들의 근면한 노동이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낫을 갈고 닦는 남자의 모델은 그의 남동생이었다.
유럽에서 19세기 말은 박람회의 시대였다. 북유럽 국가들에서 예술 작품은 민족사의 주요 사건이나 민족시의 영향을 받은 신화적 주제를 다루었는데, 핀란드나 노르웨이처럼 아직 독립을 이루지 못한 국가에서는 이를 통해 특히 자국의 민족 예술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1891)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1649dutn.jpg" data-org-width="1000" dmcf-mid="4hyvoKSrW2"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1649dutn.jpg" width="658">

페카 할로넨 <풀 베는 사람들> (1891)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핀란드의 눈 덮인 풍경
<카렐리아의 개척자들>(1900)은 샤반느의 파리 시청 프레스코화 시리즈에 강하게 영향받은 작품이다. 핀란드인에게 카렐리아 지방은 단순한 지리적 영역을 넘어, 민족 정체성과 역사적 자부심, 문화적 상징성을 모두 담고 있는 공간이다. 그림의 중심 구성은 왼쪽의 나무 벌목꾼들과 오른쪽의 돌을 굴리는 사람들이 수직으로 솟은 나무를 향해 각각 대각선의 대립을 만들어 내면서 긴장감과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1900년 헬싱키의 전시회를 위해 완성되었고 화가는 “차분한” 핀란드 작품을 묘사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1900)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2937sscq.jpg" data-org-width="1000" dmcf-mid="8Swrx0waW9"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2937sscq.jpg" width="658">

페카 할로넨 <카렐리아의 개척자들> (1900)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고향 지역의 풍경 속 사람들과 숲속 깊은 곳에서 본 것들이 그가 줄곧 그린 주제였다. 그는 핀란드가 아직 러시아 제국의 대공국이었던 시절부터 1917년의 독립, 이후 1930년대까지 핀란드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보냈다. 낭만주의적 민족주의의 주제를 북유럽식 사실주의 스타일로 그리면서도 고갱과 자포니즘(우키요에를 비롯한 일본의 회화와 장식 예술이 19세기 서유럽의 회화·건축·의복 등에 평면성, 비대칭 구도, 극적 원근법 등으로 영향을 미친 경향성)의 반영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발견된 주제 중 하나가 핀란드의 자연, 그중에서도 핀란드의 눈 덮인 풍경이었다. 페카 할로넨이 고수한 원칙은 ‘야외 그림은 야외에서 그린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실내에 앉아 창을 통해 바깥을 그리는 풍경화들이 대부분이었다) 프랑스 인상파의 현장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겠으나 핀란드의 겨울 기온은 영하 20도가 예사라는 변수가 있는 것이다. 눈이 내리는 다양한 형태와 눈 덮인 풍경을 그리는 할로넨의 감수성은 독특하다. 그만큼 능숙하게 겨울 풍경의 미묘한 톤과 색채를 묘사한 화가는 없었다.
할로넨의 예술에서 마가목이 특별하게 서 있는 것은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다. 마가목은 전통적으로 핀란드인들에게 신성한 나무였으며 (카렐리아 지방에서 채집된 민담을 기초로 집대성한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에도 등장한다), 할로넨의 어머니는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과 나무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했다고 한다. 매우 핀란드적이다. 자연에 대한 범신론적 존중과 마가목의 상징적 의미가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반복해 그린 그의 그림들에서 잘 전달된다. 초여름에는 화려한 꽃이 피고 가을에는 붉은 열매가 흐드러지게 열려 처진 가지에 자연스러운 장식을 형성하는 마가목은 바위가 많은 토양에서 자라며 흔히 핀란드의 활력을 상징한다. <마가목>(1894)은 할로넨이 고갱의 제자였던 시기에 그려진 것이다. 악셀 갈렌의 편지에는 이 그림이 매우 섬세한 작업이며 이상하게도 자연이 숨을 참는 듯 긴 기다림의 순간을 평온하게 전달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할로넨이 그리는 풍경은 대부분 숲 깊숙한 곳에서 클로즈업 되어 있고 이 작품도 그렇다. 1930년에 그린 <눈 덮인 마가목>과 비교하면 스타일의 변화를 알 수 있다.

(1894), [우] 페카 할로넨 (1930) / 그림출처. Halosenniemi Museum"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4173xlhg.jpg" data-org-width="1000" dmcf-mid="6DDwQ3Dgv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4173xlhg.jpg" width="658">

[좌] 페카 할로넨 <마가목> (1894), [우] 페카 할로넨 <눈 덮인 마가목> (1930) / 그림출처. Halosenniemi Museum


<보트에 탄 여인>(1924)에는 고요한 초록 수면 위 떠 있는 보트에 붉은 색조의 옷을 입은 여성이 앉아 있다. 그녀는 한 손으로 흰 물체를 꼭 쥔 채 생각에 몰두해 있다. 수면에 숲이 비춰들 듯 그녀의 얼굴에 또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반영되었다. 미동 없는 정적이 느껴진다. 색상의 사용을 주목할 만하다. 전형적인 가을 톤의 녹색, 갈색, 회색 등을 깊이 있게 사용했고 수면의 질감을 통해 반사된 나뭇잎의 질감까지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인물의 고독은 고립과 성찰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개인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 내면의 탐색으로서의 예술 행위를 반추하게 한다.

(1924) / 그림출처. © Artvee.com"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5419lodu.jpg" data-org-width="1000" dmcf-mid="P2EDPFEov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5419lodu.jpg" width="658">

페카 할로넨 <보트에 탄 여인> (1924) / 그림출처. © Artvee.com


영원하고 신성한 자연
할로넨이 자연과 사람을 극적으로 대비시킨 기념비적인 작품 <얼음 위의 세탁>(1900)도 인상적이다. 건물도 나무도 모두 원경으로 물러나 있고 근경엔 망망대해와도 같은 눈 덮인 얼음 위에 한 줌 구멍과 허리 구부린 한 사람과 얼마 안 되는 빨랫감뿐이다. 건물, 빨래터, 인간 형상은 모두 무광의 표면으로 채색되어 있고 또렷한 윤곽선을 지니고 있다. 인공물인 건물이 단조롭고 균일한 높은 채도의 색으로 채색된 것에 비해, 나무와 덤불, 눈을 구성하는 다양한 색조는 섬세하고 투명하다.

(1900)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6682bqpl.jpg" data-org-width="1000" dmcf-mid="QBh9YAKpW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6682bqpl.jpg" width="658">

페카 할로넨 <얼음 위의 세탁> (1900)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8명의 자녀를 둔 할로넨 부부는 자신들이 먹을 작물을 경작하며 ‘환경 조건에 따라’ 살았다. 그들은 헬싱키 북쪽 투술란야르비 호수 주변에 형성된 예술가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할로넨이 지은 할로센니에미 목조 스튜디오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스튜디오는 거대한 바위가 있는 호숫가에 자리 잡았고 계절의 변화를 즉각 느낄 수 있었던 탓에 그는 자기 집 앞 자연을 루브르라고 부를 정도로 그로부터 무한한 영감을 얻었다.
“예술에서 평화와 조화를 찾는 것이 제 종교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영감의 원천은 자연입니다. <...>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려면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1922)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7957mugy.jpg" data-org-width="1000" dmcf-mid="xll2Gc9UW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7957mugy.jpg" width="658">

페카 할로넨 <겨울 풍경> (1922) / 그림출처. Google Art Project


핀란드 단일 국가에 대한 그의 이상주의적 신념은 러시아/소련과의 전쟁을 겪으며 피폐해졌고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의 정신적 격변은 금욕적인 단순화의 형태로 그림에 반영되었다. <첫눈>(1931)은 할로넨이 생애 말년에 그린 작품이다. 1890년대부터 탐구되어 온 자포니즘의 표현 방식은 더욱 과감히 절제미를 보인다. 침묵의 숭고한 느낌이 전해진다. 절벽 위의 외로운 소나무를 클로즈업함으로써 그의 작품 중 가장 명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할로넨에게 자연은 영원하고 신성한 것, 무엇보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지속해서 바라볼 만한 영속성을 상징했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해냈던 20세기 초의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간절해지는 평안의 가치가 가녀린 나무 한 그루에 오롯이 담겨있다.

(1931) / 그림출처. Halosenniemi Museum"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9240mels.jpg" data-org-width="999" dmcf-mid="yU2wQ3Dgvz"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7/ked/20251107095859240mels.jpg" width="658">

페카 할로넨 <첫 눈> (1931) / 그림출처. Halosenniemi Museum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