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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세기 초반 영국을 대체한 이후 100년 가까이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초강대국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제국인가? 이런 질문은 당연하지만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의 본질적 성격과 대내외 정책을 종합 평가해야 하는데, 미국은 제국 또는 제국주의의 통념에 부합하는 특성과 그에 반하는 특성을 다 갖고 있어서다.
미국은 1776년 군주국가이자 식민지 모국인 영 제국에 맞선 독립전쟁에서 승리했고, 유럽 구세계의 봉건 질서와 단절한 ‘공화국’으로 탄생했다. 자유와 평등이 건국 이상이자 헌법적릴게임 종류
가치였다. 이는 침략과 정복을 통한 영토 확장과 식민지 건설에 전력을 쏟아부었던 로마·몽골·오스만 등 역사상 대제국은 물론, 근대 이후 스페인·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제국주의와도 구별된다. 이런 배경은 미국(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인 ‘미국 예외주의’의 근거가 됐다. 한마디로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인류 역사에서 특별한단기주식
섭리적 사명이 있다는 신념이다.



미 제국 연구 l 앤서니 G. 홉킨스 지음, 한승훈 옮김, 너머북스, 6만6000원.


영국 역사학자 앤서니 홉킨스(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는 통념과 신화를 반박한다. 그의 2018년 NICE 주식
저작 ‘미 제국 연구’(원제는 American Empire)는 미국의 국가 서사를 지구적 제국사의 맥락에 놓고 미국 예외주의 신화를 체계적으로 해체한 책이다. “야망이 큰 국가에는 항상 어떤 형태의 섭리주의가 수반된다. 사명감은 잘못된 형태의 독특함에 대한 자의식을 낳고, (그것이) 물질적 힘과 결합하면 특권과 우월성에 대한 근거 없는 가정을 불러오기 쉽다3H 주식
.”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일본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예외주의 신화를 지어내는 데 예외가 아니었다.
홉킨스는 1450쪽(번역서)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서 ‘제국’을 세계화의 핵심 동력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초기 세계화(18세기)-근대 세계화(19세기 말)-탈식민 세계화(20세기 중반)라는 세 국면을 따라 미국사의 궤적바다이야기 pc용
을 재배치한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장경제 발달과 재정 수요의 급증은 국가의 군사적 팽창과 중앙집권화를 촉진했다. 이는 주요 군사-재정 국가들의 전쟁과 상호파괴로 귀결됐다. 1776년 미국혁명은 식민지 아메리카에 대한 영국의 세수 압박과 정착민 영토 확장 규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반란이었다. 영국 본토와 식민지 엘리트 간의 경제·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제국이 스스로 분열했을 뿐, 그 체제의 논리, 즉 정착민 식민주의, 토지 약탈, 원주민 지배는 그대로 이어졌다. 신생 공화국의 정부 형태도 선출군주제에 가까운 대통령제를 채택했으며 군사, 재정 등 핵심 제도들은 영국의 모델을 따랐다.



1898년 5월 미국-스페인 전쟁 중 필리핀 마닐라 만 전투를 묘사한 그림. 왼쪽에 미국 해군 군함 유에스에스( USS) 올림피아호가 함포를 발사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19세기 후반 ‘근대 세계화’는 산업화와 국민국가의 출현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역사적 흐름의 산물이었다. 지은이는 제국주의 절정기이던 이 시기에 미국 역시 “고립된 관찰자가 아니라 열성적 참여자”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과 똑같은 행로를 밟았다고 강조한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국의 국가 통합을 시험하고 증명한 결정적 사건이자 미국 제국 역사의 새 장을 연 분기점이었다. 미국은 쿠바·푸에르토리코(카리브해), 하와이(태평양), 필리핀(아시아)을 식민지나 해외 영토로 확보했다. 모두 작은 섬나라들이었지만, 아우르는 세력권은 광대했다. 미국은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하며 일약 열강으로 떠올랐다. 미국에서 제국주의는 국가 건설의 일부였다.
20세기 전반기 제국주의 국가들이 맞붙은 두 차례 세계대전이 끝나자 식민지 해방과 신생국 독립이 지구촌을 휩쓸었다. 무력 침탈과 영토 정복을 통한 직접적 식민지 통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때까지 미국의 점령지 섬들은 영국과 프랑스 제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식민지를 보여준다. 직·간접 통치 방식, 식민지 동화와 연합 정책, 심지어 제국의 우월감과 인종적 편견까지 똑같았다. 유럽 열강들이 해외 식민지를 탈식민지화하자 미국도 섬 제국을 해체했다. 1945년 이후 미국이 과거 제국과 달랐던 것은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는 대신 군사기지 주둔과 소프트 파워 행사로 전략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에 대한 분석은 있었다. 100년도 더 전인 1902년 브룩스 애덤스는 ‘새로운 제국’(New Empire, 번역서 미출간)에서 이렇게 썼다. “1789년에 미합중국은 기독교계의 변두리 황야였다. 오늘날 미합중국은 문명의 심장이자 에너지의 중심이다. 이 연방은 지구 반 바퀴를 아우르는 성장 중인 거대한 제국,(…) 이제껏 발달한 가장 정교하고도 강력한 산업체계를 소유한 제국을 형성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선 ‘네오콘’으로 대변되는 강경파들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가 외교·안보 전략을 지배했다. 2003년 조지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세계를 향해 “미국의 편 아니면 적”이라고 선언했다. 학계에서도 미국의 제국주의 성격을 두고 관심과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2003년 5월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전 종전 선언을 위해 직접 군용기를 몰고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갑판에 착륙한 모습. AFP 연합뉴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경제사)는 2004년 ‘콜로서스-아메리카제국 흥망사’(2010, 21세기북스)에서, 미국이 스스로 제국임을 인정하고 제국답게 처신해야 미국도 살고 세계도 산다고 주장했다. 퍼거슨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수정주의 시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뉴욕대 역사학자들인 제인 버뱅크와 프레더릭 쿠퍼는 고대 로마에서 주요 2개국(G2) 시대까지 아우른 ‘세계제국사’(2016, 책과함께)에서 미국을 ‘공화정 제국’으로 규정했다. “초기 로마인들과 마찬가지로 신생 미주연합에 열광한 사람들은 공화정체와 제국 팽창 사이에 어떤 모순도 없다고 보았”으며, “미국은 전쟁, 법률, 팽창을 통해 제국 방식을 단언하고 강요했다.”
홉킨스의 차별성은 미국사를 세계사적 좌표 위에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을 고립된 예외가 아니라 영 제국의 연장선이자 20세기 세계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태로 파악했다. 이 관점은 ‘지구사(글로벌 히스토리)’라는 최근 역사학의 흐름과도 맞닿는다. 원저의 부제가 ‘A Global History’다. 지은이가 책의 구성을 1915년 영 제국의 이라크 침공 일화로 열고(프롤로그),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8년 전쟁의 수렁에서 겨우 빠져나온 것으로 마무리(에필로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