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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위로’라는 세계를 알려준 작가가 있다면, 그것은 ‘거리의 의사’로 불리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이다.
그의 글을 좋아해서 그의 책 10여권을 모두 다 읽었다. 어떤 책은 온통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고, 어떤 책은 필사를 하면서 읽었고, 어떤 책은 만나는 사람마다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열렬히 탐독했던 책들도 이제 나이가 들면서 제목도 내용도 대부분 잊혔다. 딱 2군데만 제외하곤 말이다.
아기 잃은 엄마를 살린 말 “아이 이름이 뭐였나요?”
한 대목은 ‘홀가분’(해냄)에 나오는 백일도 안 된 아기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엄마의 이야기다. 이 엄마는 반년이 지나도록 아기의 죽음으 패브릭하우스 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변에선 “인연이 닿지 않는 아이였나 보다. 애초부터 세상에 안 나왔다 생각하고 다 잊으라”며 위로했다. 이 말들에 엄마는 고맙기보단 화가 치밀거나 서운하기만 했다. 그녀가 자신을 추스르기 시작한 건 어느 날 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정신과에서 의사가 던진 첫 질문 덕분이었다. 의사는 그녀의 사연을 디딤돌 최상위수학 듣고 나서 “그 아이 이름이 뭐였나요?”라고 물었다. 아무도 물은 적이 없었던 아이의 이름, 하지만 아이가 살았더라면 수백번, 수천번 불렸을 이름이었다. 아이의 이름을 말하면서부터 엄마는 생기를 찾고 반짝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가 세상에서 한 ‘존재’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그녀를 회복시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태극기 할아버지 회개시킨 말 국민은행 청약저축 “고향이 어디세요?”
다른 한 대목은 ‘당신이 옳다’(해냄)에 나오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이야기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일군의 노인들이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그 현장에 있던 정혜신 의사는 그 고통스러운 소동이 끝난 후 행패를 부리던 노인 한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고 한 적금 금리 계산 다. 그는 노인에게 그 행패에 대해 묻는 대신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에서 노인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아내와 살았던 시절 얘기부터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들과 며느리 이야기까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정혜신 의사는 한참을 조용히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러자 노인이 불쑥 사과를 했다.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세월호 유가족)들한 아이패드예상 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
어른이 된다는 건, 상실을 다룰 줄 알게 되는 것
이 대목들은 해묵은 내 문제를 해결하게 만드는 구절도 아니었고, 새로운 심리학적 설명으로 삶의 진리를 통찰하게 하는 구절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대목들에 아주 오래 멈춰섰고, 이후에도 내내 이 대목들을 떠올렸다. 내가 이 대목들에 사로잡힌 이유를 알게 된 건, 크고 작은 생의 여러 상실을 겪고 난 뒤였다.
“아기 이름이 뭐였어요?” “고향이 어디세요?”라는 질문은 상실에 대한 최고의 위로였던 거다. 이 두 질문은 상실한 대상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게 만드는 말이 아니라, 상실한 그 대상에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줌으로써 진짜 위로를 해주는 말이었던 거다.
인생은 상실의 연속이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완벽한 생의 터전인 자궁을 잃고, 자라나면서 우정을 잃기도 하고 실연을 당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선 직업이나 재산, 건강을 잃기도 하고, 언젠간 부모형제도 잃고, 이르게는 자녀를 잃기도 하며, 종국에는 자신의 생명도 잃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진짜 뜻은 상실을 다룰 줄 알게 된다는 뜻이고, 우울증이나 분노조절장애, 자살충동, 알코올중독은 상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거리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목놓아 부르짖는 사람들의 본질적인 문제도 달래지지 않는 상실감-자신의 젊음과 건강, 사회적 지위, 인생에 걸었던 기대와 꿈에 대한-으로 인한 분노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심리학은 상실을 다루는 학문이며, 심리상담은 상실로부터 회복되게 도와주는 과정이다. 위로란 실은 상실에 대한 위로이다. ‘위로’라는 단어 앞에는 늘 ‘상실에 대한’이라는 말이 생략돼 있다. 일과 사랑, 관계, 돈과 꿈…이들을 잃어버리고 상실해버린 자리가 우리가 넘어지고 주저앉는 자리이고, 위로가 필요한 자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을 빨리 잊게 해주는 것이 위로라고 생각한다. 실은 그 반대다. 상실한 대상을 함께 소중히 감싸 안아주고 함께 기억해주는 게 위로다. 함께 기억해줌으로써 그 사람의 삶에서 그 대상이 영원히 생명을 지니고 살아있는 존재로 느끼게 해주는 게 위로다.
한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상을 상실했을지라도 그 무언가가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우리는 그를 상실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위치가 밖에서 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상실에 대한 위로의 말은 “함께 추억하자”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를 젖병으로 먹이기 시작해 15년간 자식처럼 키워온 내 친구는 자신의 반려견 ‘보리’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맺힌다. “보리가 몇 년 뒤면 세상을 뜰 텐데, 그때 내가 어떻게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보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나는 정말 못 살 거 같아. 나도 같이 따라가고 싶을 거 같아.”
지난 15년간 보리는 내 친구가 출근할 때마다 이별을 아쉬워했고, 내 친구가 퇴근할 때마다 이산가족 상봉처럼 환호했으며, 내 친구가 눈물을 흘릴 때마다 눈물을 핥아줬고, 내 친구가 잠이 들 때마다 자기 몸통을 바짝 붙여 들숨과 날숨을 함께 했다. 그 모든 시간을 나도 생생히 목격했지만 진짜 ‘위로’가 뭔지 몰랐다면, 나는 “더 예쁜 강아지 입양해서 키우면 되지” “부모님께서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상처받겠니?” “보리가 하늘에서 널 지켜줄 테니 그런 생각하지 마!” 등과 같은 말로 성급히 친구의 마음을 달래려 했을 것이다.
대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보리가 몇 년 뒤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나도 마음이 너무 저려. 그날이 오면 내가 만사 제치고 너 옆에 있어 줄게. 한 달이고 일 년이고 너 옆에서 함께 보리 사진도 보고 보리 동영상도 보면서 보리 이야기를 나눌게. 우리 함께 영원히 보리를 추억하고 그리워하자.”
이 말에 친구는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너 그 약속 꼭 지켜야 된다!”
정혜신 의사로부터 배우지 않았다면, 우리의 대화가 이렇게 웃으며 마무리될 순 없었을 것이다.

#김이후의 정확한 위로는?

필자는 언론사에서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한 뒤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먹고 삽니다. 현재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누구라도 찾아와서 고민을 얘기하면 ‘정확한 위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입니다. 인터넷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에서 더 많은 ‘정확한 위로’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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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후의 정확한 위로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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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후 afterthislife@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