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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재학 PD 6주기①] 부당해고 인정된 아나운서·PD·작가·MD들, 원래 일자리 돌아가지 못하고 차별 피해…그럼에도 계속 싸우는 이유는
[미디어오늘 김예리, 노지민 기자]
▲2026년 2월 4일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6주기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를 노동자로 인정한 판결은 수많은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러나 방송계에선 여전히 이들을 향한 차별과 '꼼수' 대응이 만연하다. 사진은 고 이재학 PD(가운데), KBS청주총국의 K 작가(좌측 하단 야마토게임연타 사진의 우측), 이산하 UBC 아나운서(우측 하단).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는 생전 소송을 시작할 때부터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을 말했다. “판례 남기면 전국에 알려지게 되겠죠. 14년 동안 못 썼던 계약서 한 번이라도 쓰겠죠. 전국에 있는 프리랜서들. 당장 회사가 릴짱 후배들에게 조심하고요.” 이재학 PD가 세상을 떠난 지 6년, 그와 같이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다 해고 당한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 받는 사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 상당수가 여전히 제대로 된 계약을 맺거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노동자 상대로 불복 소송을 이어가거나, 원래 일자리보다 열 바다이야기모바일 악한 처우를 강요하면서다. 어렵게 복직하더라도 차별은 계속된다. 미디어오늘은 4일 이재학 PD 6주기를 맞아 '제2의 이재학'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남헌 춘천MBC 예능·교양 PD는 2020년 고 이 PD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을 당시 “애써 모른 척해야 했다”고 말했다. 고인과 김 PD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AD 업무와 PD 연 릴게임손오공 출을 병행했고, 회사에 붙박이로 일했다는 점도 같았다. 그는 2년 뒤인 2022년 2월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됐다. 4년 째 복직을 위한 법적 다툼 중이다.
▲김남헌 PD가 해고 전 일한 강원 춘천 삼천동 춘천MBC 사옥 2층 편성제작팀 편집실 책상.
바다이야기고래
부당해고 인정됐지만 계약서 못 쓰는 이유
김 PD는 2024년 4월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그를 복직시켜야 한다고 명령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김 PD는 “마치 '오픈북' 테스트를 하는 것 같았다. 이재학 PD의 판결례라는 답안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불복했고 항소심에서 “예상 밖의 판단”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은 김 PD에 대해 부당해고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정규직, 업무직, 방송지원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PD는 이에 상고했다. 길어진 다툼에 지난달 2일 '일단' 출근하게 된 김 PD는 하루 6시간 근무에 주당 43만 원을 받으며 '완제'(광고 편성에 맞춘 방영분 편집) 작업만 하고 있다.
법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판단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법률원장을 지낸 권두섭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근로자 지위가 인정된 특수고용이나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례 흐름을 보면, 사내에 동종·유사 업무가 있을 경우 해당 정규직의 근로조건을 적용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직군에 편입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판단해왔다”고 설명했다.
김 PD는 2심 결과를 두고 “재판부가 의도적으로 제3의 차별직군을 만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재학 PD는 2심에서 완전히 노동자로 인정받았으니, 제가 'PD 2호'로 판결 흐름을 다시 망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선례를 만들면 그 다음 사람은 (자기 편) 2명을 갖고 가는 거지 않나”라고 말했다.
▲2020~2021년 '이재학 PD 6주기, 방송노동 백래시 6년'.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사망 이후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 해고·사망 사건과 정부·방송사 조치 및 노동자성 인정 사례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2022~2023년 '이재학 PD 6주기, 방송노동 백래시 6년'.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사망 이후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 해고·사망 사건과 정부·방송사 조치 및 노동자성 인정 사례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정규직' 인정 받아도…“회사가 대놓고 이러니, 고립 당연”
'무늬만 프리랜서'를 노동자로 인정한 판례는 속속 쌓여 왔다. 이재학 PD가 일했던 청주 지역에선 최근 KBS청주총국 방송작가가 노동위원회 초심과 재심에서 모두 노동자로 인정 받았다. K 작가는 11년 간 라디오 작가로 일하다 방송 폐지를 이유로 해고를 통보 받았다. 그러나 '판정 결과를 존중하겠다'던 KBS는 불복을 거듭하고 있다. 청주 지역 시민사회는 대책위원회를 출범해 KBS청주에 특별근로감독을 청원했고, 최근 노동부가 감독에 착수했다.
울산 지역엔 UBC울산방송에서 5년 넘게 일하다 2021년 4월 해고된 이산하 아나운서가 있다. 이 아나운서는 노동위원회 초·재심과 행정소송에서 모두 이겼지만 아나운서로 일터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UBC는 그에게 단시간(하루 4시간)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계약을 요구했고, 이 아나운서는 일반직(정규직)으로 인정받기 위한 소송에 나서야 했다. 소송에서 이긴 뒤에는 사측이 이 아나운서가 맡던 방송을 폐지하고는 그를 편집요원에 배치했다. 이 아나운서는 또다시 부당전직을 인정 받기 위한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법원이 부당전직을 인정했지만 회사가 항소했다.
▲이산하 UBC울산방송 아나운서가 지난 2024년 1월18일 울산 중구 UBC울산방송 사옥 앞에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아나운서는 “2021년 복직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일해본 적이 없다. 일하던 시간도 줄고, 원래 하던 방송 일을 주지 않고. 모든 소송에서 결과적으로 이겼음에도 제대로 일 한 번 한 적 없다는 점이 화가 난다”고 했다. “회사에서 내놓고 그러니 고립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심경도 전했다.
김 PD는 “이재학 PD가 지나간 길을 걸으면서, 그가 느꼈을 절망의 포인트를 다 알겠다”고 털어놨다. “매일 곱씹고 되새기면서 절망과 희망 사이를 왔다갔다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몸과 마음을 다쳤다. 종이 서류만 건네받으면 심장이 쿵쾅거려, 옆에 엎어놨다가 나중에 본다. 회사에 돌아온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1심과 2심 판결문은 친구가 대신 읽어줬다.
▲A씨가 일한 안동MBC 주조정실 모습.
인권위 권고 나와도…“방송사 태도, 김문수 떠올라”
안동MBC에서 2022년 10월 해고된 뒤 법원에서 2024년 불법파견을 인정받아 복직한 A씨도 차별을 겪고 있다. 그간 안동MBC에선 기간제와 파견으로 2년씩 일하게 한 MD들을 계약만료 형식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잘린' MD 중 한 명이었던 A씨는 이재학 PD 사건과 동료 MD의 불법파견 소송을 접하고서야 “나도 불법파견일 수 있겠다. 회사가 나를 쓰고 버릴 존재로 대하는구나”라고 처음 생각했다.
약 2년 만에 돌아온 A씨에게 안동MBC는 이미 2021년 폐지된 '고졸 호봉'을 제시했다. 2021년 이전 입사자에 새 제도를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다.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를 진정했고, 인권위는 안동MBC 조치가 “헌법상 평등권 침해”라며 시정권고 결정문을 냈다. 그러나 회사는 지난해 9월8일 A씨의 호봉 재평정 안건을 부결시켰다. 안동MBC 경영담당자는 미디어오늘에 인권위 권고를 따르지 않은 이유로 “A씨에게 (개선된 호봉을) 소급 적용할 경우, 사내에서 고졸이나 전문대졸 호봉을 적용받는 이들 모두에게 (개선된 호봉을) 적용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A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한다. '법적으로 문제 없어, 소송하고 싶으면 해'”라며 “그러나 소송하기 겁난다. 법원이 내 손을 들어줘도 회사가 항소하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김문수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노동자들의) 민사 소송을 오래 끌어 가정파탄 나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방송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2024년 '이재학 PD 6주기, 방송노동 백래시 6년'.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사망 이후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 해고·사망 사건과 정부·방송사 조치 및 노동자성 인정 사례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나도 죽어야 바뀔까…이대로 멈출 순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계속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아나운서는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싸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힘들고 몸도 아프다”면서도 “여기서 멈추면, 어떤 회사든 누군가를 내보내고 싶을 때 '직군을 바꿔버리면 된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고 했다.
김 PD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이재학'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나도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날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바꾸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김남헌의 판결을 가지고 싸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재학 PD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을 거다. 그래서 이대로 멈출 순 없다”고 말했다.
“방송사가 '버티면 손해' 돼야”
노동자들은 방송사의 '버티기'와 '피말리기' 꼼수 대응을 바꾸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K 작가는 “방송사가 부당해고 판정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판정을 이행하지 않아도 실질적인 불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며 “노동위 판정의 구속력을 강화해야 한다. 구제명령 불이행 시 이행강제금과 제재를 사용자 규모에 맞게 상향해야 한다. '버티면 손해가 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제대로 된 감시 기관이 있어야 한다”며 “문제는 방송문화진흥회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고용노동부처럼 그런 역할을 해야 할 곳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곳에 있는 분들과 대화를 하고 싶은데, 창구조차 찾을 수 없다. 인권위 권고는 강제성이 없다고 하고, 노동부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노동부에도 임금차별 진정에 나섰지만, 노동부 안동지청 담당자는 '성별과 연령, 신분'에 의한 차별 진정 사건만 소관'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4일 충북 청주시 목련공원 내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가 봉안된 납골함. 청주방송 소수노조인 우리노동조합의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사진=이재학PD 유족 제공
김 PD는 “애초에 법으로 프리랜서를 그렇게 뽑지 말아야 하는 제도가 시급하다”라며 “최근 노동부의 방송사 기획근로감독 결과가 나왔지만, 그런 발표는 전혀 의미가 없다. 실무자 입장에선 위로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가 (감독 결과를) 회사에 내밀고, 회사는 이행 결과를 보고하면 거기서 멈추는 '보여주기 식'”이라는 비판이다. 그는 “앞으로 들어올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K 작가는 이재학 PD 사건이 지역 사회에, 방송계 전반에 미친 영향을 곱씹었다. 그는 “과거에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거나 '다들 그렇게 버틴다'는 말로 쉽게 넘겨지던 일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한다고 여겨졌던 부당함에 대해, 적어도 '이건 아니지'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고 생각한다”라며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갈 길은 멀지만 이 PD의 사건이 남긴 울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미디어오늘 김예리, 노지민 기자]
▲2026년 2월 4일은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6주기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를 노동자로 인정한 판결은 수많은 '무늬만 프리랜서'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러나 방송계에선 여전히 이들을 향한 차별과 '꼼수' 대응이 만연하다. 사진은 고 이재학 PD(가운데), KBS청주총국의 K 작가(좌측 하단 야마토게임연타 사진의 우측), 이산하 UBC 아나운서(우측 하단).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는 생전 소송을 시작할 때부터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을 말했다. “판례 남기면 전국에 알려지게 되겠죠. 14년 동안 못 썼던 계약서 한 번이라도 쓰겠죠. 전국에 있는 프리랜서들. 당장 회사가 릴짱 후배들에게 조심하고요.” 이재학 PD가 세상을 떠난 지 6년, 그와 같이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다 해고 당한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 받는 사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 상당수가 여전히 제대로 된 계약을 맺거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노동자 상대로 불복 소송을 이어가거나, 원래 일자리보다 열 바다이야기모바일 악한 처우를 강요하면서다. 어렵게 복직하더라도 차별은 계속된다. 미디어오늘은 4일 이재학 PD 6주기를 맞아 '제2의 이재학'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남헌 춘천MBC 예능·교양 PD는 2020년 고 이 PD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을 당시 “애써 모른 척해야 했다”고 말했다. 고인과 김 PD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AD 업무와 PD 연 릴게임손오공 출을 병행했고, 회사에 붙박이로 일했다는 점도 같았다. 그는 2년 뒤인 2022년 2월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됐다. 4년 째 복직을 위한 법적 다툼 중이다.
▲김남헌 PD가 해고 전 일한 강원 춘천 삼천동 춘천MBC 사옥 2층 편성제작팀 편집실 책상.
바다이야기고래
부당해고 인정됐지만 계약서 못 쓰는 이유
김 PD는 2024년 4월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그를 복직시켜야 한다고 명령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김 PD는 “마치 '오픈북' 테스트를 하는 것 같았다. 이재학 PD의 판결례라는 답안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불복했고 항소심에서 “예상 밖의 판단”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은 김 PD에 대해 부당해고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정규직, 업무직, 방송지원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PD는 이에 상고했다. 길어진 다툼에 지난달 2일 '일단' 출근하게 된 김 PD는 하루 6시간 근무에 주당 43만 원을 받으며 '완제'(광고 편성에 맞춘 방영분 편집) 작업만 하고 있다.
법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판단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법률원장을 지낸 권두섭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근로자 지위가 인정된 특수고용이나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례 흐름을 보면, 사내에 동종·유사 업무가 있을 경우 해당 정규직의 근로조건을 적용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직군에 편입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판단해왔다”고 설명했다.
김 PD는 2심 결과를 두고 “재판부가 의도적으로 제3의 차별직군을 만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재학 PD는 2심에서 완전히 노동자로 인정받았으니, 제가 'PD 2호'로 판결 흐름을 다시 망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선례를 만들면 그 다음 사람은 (자기 편) 2명을 갖고 가는 거지 않나”라고 말했다.
▲2020~2021년 '이재학 PD 6주기, 방송노동 백래시 6년'.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사망 이후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 해고·사망 사건과 정부·방송사 조치 및 노동자성 인정 사례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2022~2023년 '이재학 PD 6주기, 방송노동 백래시 6년'.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사망 이후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 해고·사망 사건과 정부·방송사 조치 및 노동자성 인정 사례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정규직' 인정 받아도…“회사가 대놓고 이러니, 고립 당연”
'무늬만 프리랜서'를 노동자로 인정한 판례는 속속 쌓여 왔다. 이재학 PD가 일했던 청주 지역에선 최근 KBS청주총국 방송작가가 노동위원회 초심과 재심에서 모두 노동자로 인정 받았다. K 작가는 11년 간 라디오 작가로 일하다 방송 폐지를 이유로 해고를 통보 받았다. 그러나 '판정 결과를 존중하겠다'던 KBS는 불복을 거듭하고 있다. 청주 지역 시민사회는 대책위원회를 출범해 KBS청주에 특별근로감독을 청원했고, 최근 노동부가 감독에 착수했다.
울산 지역엔 UBC울산방송에서 5년 넘게 일하다 2021년 4월 해고된 이산하 아나운서가 있다. 이 아나운서는 노동위원회 초·재심과 행정소송에서 모두 이겼지만 아나운서로 일터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UBC는 그에게 단시간(하루 4시간)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계약을 요구했고, 이 아나운서는 일반직(정규직)으로 인정받기 위한 소송에 나서야 했다. 소송에서 이긴 뒤에는 사측이 이 아나운서가 맡던 방송을 폐지하고는 그를 편집요원에 배치했다. 이 아나운서는 또다시 부당전직을 인정 받기 위한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법원이 부당전직을 인정했지만 회사가 항소했다.
▲이산하 UBC울산방송 아나운서가 지난 2024년 1월18일 울산 중구 UBC울산방송 사옥 앞에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아나운서는 “2021년 복직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일해본 적이 없다. 일하던 시간도 줄고, 원래 하던 방송 일을 주지 않고. 모든 소송에서 결과적으로 이겼음에도 제대로 일 한 번 한 적 없다는 점이 화가 난다”고 했다. “회사에서 내놓고 그러니 고립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심경도 전했다.
김 PD는 “이재학 PD가 지나간 길을 걸으면서, 그가 느꼈을 절망의 포인트를 다 알겠다”고 털어놨다. “매일 곱씹고 되새기면서 절망과 희망 사이를 왔다갔다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몸과 마음을 다쳤다. 종이 서류만 건네받으면 심장이 쿵쾅거려, 옆에 엎어놨다가 나중에 본다. 회사에 돌아온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1심과 2심 판결문은 친구가 대신 읽어줬다.
▲A씨가 일한 안동MBC 주조정실 모습.
인권위 권고 나와도…“방송사 태도, 김문수 떠올라”
안동MBC에서 2022년 10월 해고된 뒤 법원에서 2024년 불법파견을 인정받아 복직한 A씨도 차별을 겪고 있다. 그간 안동MBC에선 기간제와 파견으로 2년씩 일하게 한 MD들을 계약만료 형식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잘린' MD 중 한 명이었던 A씨는 이재학 PD 사건과 동료 MD의 불법파견 소송을 접하고서야 “나도 불법파견일 수 있겠다. 회사가 나를 쓰고 버릴 존재로 대하는구나”라고 처음 생각했다.
약 2년 만에 돌아온 A씨에게 안동MBC는 이미 2021년 폐지된 '고졸 호봉'을 제시했다. 2021년 이전 입사자에 새 제도를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다.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를 진정했고, 인권위는 안동MBC 조치가 “헌법상 평등권 침해”라며 시정권고 결정문을 냈다. 그러나 회사는 지난해 9월8일 A씨의 호봉 재평정 안건을 부결시켰다. 안동MBC 경영담당자는 미디어오늘에 인권위 권고를 따르지 않은 이유로 “A씨에게 (개선된 호봉을) 소급 적용할 경우, 사내에서 고졸이나 전문대졸 호봉을 적용받는 이들 모두에게 (개선된 호봉을) 적용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A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한다. '법적으로 문제 없어, 소송하고 싶으면 해'”라며 “그러나 소송하기 겁난다. 법원이 내 손을 들어줘도 회사가 항소하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김문수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노동자들의) 민사 소송을 오래 끌어 가정파탄 나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방송사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2024년 '이재학 PD 6주기, 방송노동 백래시 6년'.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 사망 이후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 해고·사망 사건과 정부·방송사 조치 및 노동자성 인정 사례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나도 죽어야 바뀔까…이대로 멈출 순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계속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아나운서는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싸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힘들고 몸도 아프다”면서도 “여기서 멈추면, 어떤 회사든 누군가를 내보내고 싶을 때 '직군을 바꿔버리면 된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고 했다.
김 PD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이재학'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나도 죽어야 이 싸움이 끝날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바꾸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김남헌의 판결을 가지고 싸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재학 PD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을 거다. 그래서 이대로 멈출 순 없다”고 말했다.
“방송사가 '버티면 손해' 돼야”
노동자들은 방송사의 '버티기'와 '피말리기' 꼼수 대응을 바꾸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K 작가는 “방송사가 부당해고 판정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판정을 이행하지 않아도 실질적인 불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며 “노동위 판정의 구속력을 강화해야 한다. 구제명령 불이행 시 이행강제금과 제재를 사용자 규모에 맞게 상향해야 한다. '버티면 손해가 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제대로 된 감시 기관이 있어야 한다”며 “문제는 방송문화진흥회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고용노동부처럼 그런 역할을 해야 할 곳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곳에 있는 분들과 대화를 하고 싶은데, 창구조차 찾을 수 없다. 인권위 권고는 강제성이 없다고 하고, 노동부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노동부에도 임금차별 진정에 나섰지만, 노동부 안동지청 담당자는 '성별과 연령, 신분'에 의한 차별 진정 사건만 소관'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4일 충북 청주시 목련공원 내 고 이재학 CJB청주방송 PD가 봉안된 납골함. 청주방송 소수노조인 우리노동조합의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사진=이재학PD 유족 제공
김 PD는 “애초에 법으로 프리랜서를 그렇게 뽑지 말아야 하는 제도가 시급하다”라며 “최근 노동부의 방송사 기획근로감독 결과가 나왔지만, 그런 발표는 전혀 의미가 없다. 실무자 입장에선 위로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가 (감독 결과를) 회사에 내밀고, 회사는 이행 결과를 보고하면 거기서 멈추는 '보여주기 식'”이라는 비판이다. 그는 “앞으로 들어올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K 작가는 이재학 PD 사건이 지역 사회에, 방송계 전반에 미친 영향을 곱씹었다. 그는 “과거에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거나 '다들 그렇게 버틴다'는 말로 쉽게 넘겨지던 일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한다고 여겨졌던 부당함에 대해, 적어도 '이건 아니지'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고 생각한다”라며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갈 길은 멀지만 이 PD의 사건이 남긴 울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